십자가의 역설로 다시 보는 목회 - 티머시 곰비스, <약한 자의 능력>

십자가의 역설로 다시 보는 목회

티머시 곰비스, 약한 자의 능력, 감은사, 2023

목회 현장의 현실은 우리의 기대와 다르다. 사역자 간 갈등, 교회 간 경쟁, 성공 지향적 리더십이 만연한 오늘날, 티머시 곰비스는 『약한 자의 능력』에서 바울의 목회 여정을 통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목회하고 있는가?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바울의 극적인 전환점이다. 다메섹 도상의 경험 이전, 바울은 이미 '열심 있는 종교인'이었다. 바리새인으로서 율법에 철저했고, 부활 신앙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의 종교적 열정은 폭력과 강압으로 표출되었다. 부활을 믿으면서도 부활의 생명력은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바울의 '목회적 상상력'을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저주와 수치의 상징이었던 십자가가 부활로 가는 통로임을 깨달은 순간, 그의 목회 철학은 180도 전환되었다. 권력과 성공이 아닌 연약함과 섬김이 하나님 나라의 방식임을 체득한 것이다.

곰비스는 현대 목회자들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우리는 더 이상 목회를 '목자'가 되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그의 지적은 뼈아프다. 고대 사회에서 가장 천한 직업이었던 목자 대신, 오늘날 목회자들은 CEO형 리더, 비전 제시자, 성공한 경영자의 이미지를 추구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자신의 성공을 갈망하는 이중성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한 교회를 둘러싼 영적 전쟁의 실재를 강조한다. 사탄과 죄의 세력, 우주적 권세들이 교회를 대적하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할 때, 우리는 교회 문제를 세속적 방법론으로 해결하려는 함정에 빠진다고 경고한다.

이 책의 가치는 단순히 바울의 사역을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어쩌면 진부해진 신앙의 언어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오늘날 목회 현장에 실천적 통찰을 제공한다. "십자가를 지고 따른다"는 고백이 클리셰가 되어버린 시대, 곰비스는 그 의미를 치열하게 되묻는다.

목회자뿐 아니라 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읽으며 토론하기에 적합한 책이다. 특히 사역의 방향성을 잃고 헤매거나, 목회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무엇보다 "아골 골짜기 빈들"에라도 가겠다던 첫 마음을 잃어버린 채 성공의 우상 앞에 무릎 꿇은 우리 자신을 직면하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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