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행 16:7, 개역개정).
사도행전 16:7에 따르면 바울은 소아시아 북서부 지역인 무시아에 도착했다. 아마도 바울은 무시아 지역에서 오늘날 프루사(Prusa) 혹은 도렐라이온(Dorylaion) 근교의 로마의 길의 갈림길에서 소아시아 북부, 흑해 남안 지역인 비두니아(Bithynia)와 본도(Pontus) 지역에서 선교를 하려고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아래의 지도를 보라). 그러나 사도행전은 "예수의 영"이 비두니아 지역으로 바울이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묘사한다. 비두니아로 가려는 바울의 여정을 왜 "예수의 영"이 가로막으셨을까? 이 구절은 성령이 복음 전파를 금지한 사도행전의 유일한 구절이다. 우리는 이 구절을 사도행전과 초기 기독교 선교의 구도에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본 글에서는 사도행전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인 '선교적 경쟁과 교회의 일치'라는 관점에서 이 구절을 살펴볼 것이다.

먼저 바울의 여정에 대한 지리적 해설이 필요할 것이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울은 소아시아 내륙을 남쪽(버가)에서 북쪽으로 가로질러 소아시아 중부의 거점 도시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했고 비아 세바스테(via sebaste, 황제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로마의 길)를 따라 이고니온-루스드라-더베에서 교회를 설립했다. 이후 바울은 안디옥에서 출발해서 길리기아를 거쳐 더베-루스드라-이고니온-비시디아 안디옥을 역순으로 재방문한다(행 15:41-16:1). 길리기아 속주에서 더베에 이르기 위해서 서쪽은 소아시아의 남부, 밤빌리아 지역(버가 근처)에서 동쪽으로 길리기아 지역까지 걸쳐있는 타우루스 산맥을 도보로 넘어야 했을 것이다(타우루스 산맥에 대해서 필자의 글 "비시디아 안디옥으로의 여정: 사도행전 13:13-14"를 보라). 이것을 위해 아마도 바울과 그의 선교팀은 악명 높은 컬레크 고개(Gülek Boğazı 혹은 the Cilician gates로도 불리우며 최고 고도 1050미터)를 넘어야 했을 것이다. 이 고개를 넘는 어려움은 사도행전에서 생략되어 있다. 더베에 도착한 바울은 서쪽에 위치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향한 후, 비아 세바스테를 따라 아폴로니아(Apollonia)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있다. 이후 아마도 바울은 이전과 달리 사갈라소스-버가로 향하는 남쪽 비아 세바스테로 가지 않고 대신 또 다른 교통의 요지인 아파메아(Apamea)로 간 후 아시아(소아시아 서부)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시도했을 것이다(행 16:6).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시도는 무산되고("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행 16:6a) , 바울은 북쪽으로 행로를 바꾼다. 그리고 북부 갈라디아 지역(페시누스-고르디온-게르마-앙퀴라)을 통과한 후 무시아에 이르렀을 것이다.[1] 필자는 북부 갈라디아 지역에서 무시아 지역으로 가기 위해서 바울과 그의 선교팀은 상가리우스 강의 배편을 이용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2] 상가리우스 강은 하류를 향하는 배편이 발달했고, 도보로 여행하던 바울의 선교팀은 상가리우스 강에 위치한 북부 갈라디아 교회에서 보다 편리한 운송 수단을 이용했을 수 있다고 추측한다. 게다가 무시아 지역은 상가리우스 강을 따라서 가면 이르기 간편한 지역이기도 했다. 무시아에서 바울은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지만 '예수의 영'이 바울과 그의 선교팀을 비두니아로 인도하지 않으신다("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이렇듯 바울과 그의 선교팀은 시리아 북부(안디옥)에서 소아시아를 횡단하여 무시아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과 그의 선교팀은 왜 비두니아로 가고자 했을까? 아마도 그 지역에 대한 선교적 필요를 바울이 알게 되었을 수 있고, 무엇보다 소아시아 북부에 위치한 상가리우스 강의 배편을 통해서 보다 편하게 흑해 남안에 이를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기 때문일 수 있다. 또한 비두니아-본도 지역은 소아시아 내륙보다 행정적으로 안정되고, 치안상 상대적으로 안전한 로마 속주 지역으로서 여행객들에게 보다 선호될 수 있었고 선교에 용이한 점들이 있었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수의 영은 이 지역으로 바울이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1세기 후반의 독자들은 비두니아 지역으로의 바울의 선교가 "예수의 영"에 의하여 좌절된 것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바울 당대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우리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자세한 이유에 대해서 사도행전 저자가 침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이 비두니아를 가지 않았고 이것은 "예수의 영"이 비두니아로 바울이 향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도행전이 기록된 1세기 후반 독자들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래에서 논의하겠지만, 비두니아-본도 북부 갈라디아 지역은 1세기 후반에 선교적 경쟁이 존재했던 지역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비두니아 지역은 1세기 중반 혹은 후반에 기독교 선교의 주요한 지역이었음이 분명하다. 본도(폰투스)의 총독으로 부임한 플리니(소플리니우스)는 기원후 109-110년경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보낸 서신에서 이 지역에 기독교인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고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1세기 후반에는 비두니아와 본도 지역에서 이미 활발한 선교 활동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두니아와 본도가 언급된 신약성경의 다른 본문은 베드로전서 1:1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베드로전서 1:1-2, 개역개정).
이 구절은 베드로전서가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를 순환하는 일주로를 따라서 보내진 회람서신이라는 것을 나타낸다.[3] 이것은 소아시아 북부 지역에 '베드로'의 권위 아래에 있던 교회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베드로전서가 1세기 중반에 저술되었다고 여긴다면(필자는 이 견해를 택한다) 바울이 가려고 했던 지역에는 이미 베드로로부터 보내진 선교사들이 선교적 활동을 시작했거나 추후 시작하려 했을 수 있다. 혹은 베드로전서가 1세기 후반에 저술되었다고 하더라도 1세기 후반에 베드로의 권위를 고백하는 교회가 소아시아 북부에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바울이 비두니아 지역으로 가지 않았다는 구절은 1세기 후반의 독자들은 바울이 베드로의 권위 아래에 있던 영역으로 가지 않았다고 이해했을 수 있다.
베드로가 보낸 혹은 베드로의 권위를 고백하는 그룹이 파송한 초기 기독교 선교사들은 소아시아 연안을 따라 잘 발달된 운송 수단을 따라 비두니아-본도에 이르렀을 것이다. 또한 갈라디아 지역(특히 비두니아 지역과 맞닿은 북갈라디아 지역)에도 1세기 중반에 활발한 선교적 활동이 있었을 수 있다. 베드로전서는 수신지로 갈라디아(특히 북부 갈라디아)를 언급한다(벧전 1:1). 또한 베드로의 그룹 이외에 다른 유대-그리스도교 그룹에서도 이 북갈라디아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했을 수 있다. 필자는 갈라디아서가 북부 갈라디아지역(고르디온[Γόρδιον], 앙카라[앙퀴라; Ἄγκυρα], 페시누스[Πεσσινούς], 게르마[Γέρμα] 등의 도시)에 보내졌다고 여긴다. 갈라디아서 1:6에서 갈라디아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ταχέως) 떠나 다른 복음을" 따랐다고 묘사한다. “속히"라는 부사로 보건대, '거짓 형제들'(갈 2:4)은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떠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적어도 2-3달 내에) 도착했을 것이다. 필자의 의견으로는 남부 갈라디아 지역(비시디아 안디옥-이고니온-루스드라-더베)은 험준한 주변 지형으로 인하여 초기 기독교 선교의 초반기에 선교적 경쟁이 우선적으로 일어난 지역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선교적 경쟁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접근이 용이한 지역이어야 한다. 특히 배편을 통한 선교가 가능하도록 해안에서 접근하기 용이하거나 강을 따라서 선교한 지역이었다면 접근이 보다 용이했을 것이다. 필자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이전(기원후 69년 이후) 소아시아 내륙의 불안정한 상황을 보건대, 바울의 그룹 이외의 다른 선교팀이 도보로 남부 갈라디아 지역에 경쟁적으로 도착했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 그렇다면 비두니아 지역으로부터 상가리우스 강을 통하여 용이하게 접근이 가능했던 북갈라디아 지역이 선교적 경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서 갈라디아서의 수신지라고 필자는 여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바울이 비두니아로 나아가려는 방향은 비두니아에서 유대주의자들이 갈라디아로 온 방향과 정반대 방향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북갈라디아-비두니아 지역은 초기 선교에 있어서 각 그룹들이 경쟁하던 지역이었을 수 있다.
갈라디아서 이외에 바울은 빌립보서와 고린도후서에서도 선교적 경쟁이 있었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언급한다. 필자는 소아시아 북부 지역인 갈라디아, 비두니아, 본도 지역에서도 상당한 선교적 경쟁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보스포로스 해협(이스탄불 사이를 통과하는 해엽)을 지나 흑해 남안을 통과하여 콜키스(오늘날 조지아의 서부 해안 도시)에 이르는 여정은 이미 기원전 3세기 저자인 아폴로니우스 로디우스의 서사시 '아르고나우티카'에서 상세하게 묘사된다. 따라서 지중해로부터 흑해 남안에 이르는 해양길은 오래전에 이미 확립되었을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 이후 헬레니즘 왕국 중에서 비두니아-본도(비티니아-폰투스) 왕국은 소아시아 남부에 비해서 비교적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었다. 또한 상업과 농업이 이 지역에서 번성했기 때문에 비두니아-본도은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어 있었고, 타지역과의 활발한 교역이 있었다. 이렇듯 비두니아-본도 지역은 지중해 세계에 잘 알려져 있었고 따라서 초기 기독교 선교사들이 관심을 둔 영역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비두니아-본도 지역은 아마도 일찍이 초기 기독교 선교사들이 배편을 통하여 도착한 지역이었다고 필자는 추정한다. 그렇다면 바울이 비두니아 지역을 가지 않은 것은 활발한 선교적 활동이 이미 존재한, 혹은 장차 기독교 선교가 활발하게 진행될 지역이기 때문에 가지 않은 것으로 여길 수 있다. 적어도 1세기 후반 독자들은 사도행전 16:7은 그렇게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필자는 사도행전 16:7에서 바울이 비두니아에 가지 않았다고 묘사하는 것은 사도행전의 신학 중에서 중요한 측면인 연합과 화해라는 견지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여긴다.[4] 그러나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각 선교적 그룹 간의 경쟁과 때로는 갈등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경쟁은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고린도후서 등의 바울의 증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3세기 문헌인 위-클레멘트 문서(the Pseudo-Clementines)에 베드로와 바울의 갈등이 언급되며, 위-클레멘트 문서(기원후 4세기)가 사용한 전통은 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보인다. 위-클레멘트 문서는 아마도 베드로 계열 기독교의 분화의 결과물로서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위-클레멘트 문서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간직하고 있던 초기 그리스도교 그룹들 간의 갈등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베드로와 바울이 갈등 관계였다고 우리는 여길 필요는 없다. 사도행전은 바울과 베드로 사이의 선교적 경쟁 혹은 위-클레멘트 문서에서 암시하는 갈등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도행전이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은 교회의 일치와 연합이다.
사도행전에서 "마음을 같이 하여" (ὁμοθυμαδόν) 혹은 "함께" 혹은 "한 곳에서” (ἐπὶ τὸ αὐτό)라는 표현은 두드러지게 자주 사용된다(행 1:15; 2:1, 44, 47; 4:24, 32; 5:12; 15:25). 사도행전에는 종종 교회 내의 불일치에 대해서 묘사되지만(예: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의 갈등(행 6:1-7)), 이러한 갈등은 궁극적으로 해결되며, 이러한 갈등은 교회의 선교로 이어진다. 사도행전에서 교회 내의 갈등은 화해와 선교로 연결되는 패턴이 존재한다. 사도행전 6장에서 갈등의 해결 이후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라고 묘사된다(행 6:7). 사도행전 15장에서 모세 율법 준수에 대한 논쟁 이후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행 15:35).
또한 사도행전은 성령께서 교회의 일치와 선교와 깊이 관련된 분이신 것으로 묘사한다. 성령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행 2:1-4)에서 한 장소에서 함께 기도하던 이들을 하나로 묶으셨다. 초기 기독교 신자들이 "한 마음과 한 뜻"으로 모든 것을 공유하면서 서로 섬기는 행동(행 2:42-47, 4:31-32)도 성령의 하나되게 하시는 사역의 결과일 수 있다. 이와 같이 사도행전에서 성령은 선교의 영일뿐 아니라 교회를 하나되게 하시는 분이시다. 성령을 하나되게 하시는 분으로 여기는 것은 초기 기독교에서 공유되던 가르침으로 여길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3). 그러므로 사도행전에서 성령의 활동이 교회의 연합과 관련이 될 수 있다면 비두니아에서 복음 전파를 하려던 바울의 시도를 좌절시키시고 마게도냐로 향하게 하신 성령님의 활동도 이와 같이 성령의 교회의 연합과 선교를 위한 활동으로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대니 크리스토퍼(Dany Christopher)는 사도행전 16:7에서 "예수의 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5] 그는 "예수의 영"을 단순히 성령으로 등치시키려는 기존의 해석과 달리 이 표현이 예수의 임재가 다른 지리적 영역으로 지리적으로 확장된다는 것을 암시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필자는 크리스토퍼의 통찰력 있는 해석에 공감하면서 그와 조금 다른 관점에서 "예수의 영"에 대한 언급을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사도행전에서 이미 바울의 행로를 예수님이 가로막은 적이 있다. 그것은 사도행전 9장에서 다메섹으로 향하는 바울의 행로를 예수님이 가로막으신 것이다.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행 9:4-5). 그렇다면 비두니아로의 바울의 행로를 가로막은 분이 "예수의 영"이라는 것은 이전에 바울의 행로를 예수님이 막으셨다는 것과 유사한 패턴을 형성한다. 그러므로 "예수의 영"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성령"이라는 의미를 넘어서서 앞선 패턴(사도행전 9장)을 고려한 단어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행전 16:7에서 바울의 행로가 가로막힌 것은 바울이 예수의 제자들을 핍박하기 위해서 향하는 발걸음이 좌절된 것과 다른 이유를 지닐 것이다. 바울은 예수의 제자들을 핍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비두니아로 향하고자 했다. 그러나 선교라는 측면에서 바울의 행로를 가로막으시는 예수님의 개입은 공통점을 지닌다. 첫 번째는 예상치 않았던 방식으로 바울의 인생에 개입하시고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자신의 선교를 이루시는 예수님의 개입이라는 점에서다. 두 번째는 자신의 개입을 통하여 예수님은 교회의 선교적 이슈를 직접 해결하셨다. 사도행전 16장에서 예수의 개입은 교회의 선교를 이루는 자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특히 필자는 이것을 교회의 일치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제안한다.
정리하자면 사도행전 16:7에서 "성령"이 아닌 "예수의 영"의 언급은 바울의 행로를 가로막는 예수님의 패턴과 연결될 수 있다. 사도행전은 아래와 같은 패턴이 존재한다.
1) 예수님이 바울의 행로를 가로막음(사도행전 9장, 사도행전 16장).
2) 갈등의 해결 이후 복음의 확장이 있음.
"예수의 영"이 비두니아로 가는 바울의 발걸음을 가로막은 장면은 '선교적 경쟁 속에서 갈등의 조정과 해결'이라는 관점에서 조망해야 한다고 필자는 제안한다. 비두니아는 1세기 중반 혹은 후반에 베드로의 그룹이 선교를 한 지역이었고, 사도행전 저자는 16:7에서 "예수의 영"이 비두니아에 가려는 바울의 행로를 가로막으셨다는 것을 언급하며, 이것으로 말미암아 비두니아-본도 지역에 바울이 가지 않았고 바울이 이 지역에 가지 않은 것이 예수님의 뜻이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베드로를 따르는 그룹의 영역으로 알려질 소아시아 북부(비두니아-본도)에 방문하지 않았고, 이것이 예수의 뜻이었다. 반면 남부 갈라디아 지역에 위치한 비시디아 안디옥-이고니온-루스드라-더베에 바울이 무려 네 차례나 방문했다는 것을 사도행전은 기록한다(행 13:14-15; 14:1 등). 이렇듯 사도행전은 암묵적으로 남부 갈라디아 지역이 바울의 관할권 아래에 있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바울은 비두니아-본도 지역은 방문하지 못했고, 이 지역은 바울이 관할할 수 없는 지역이다.
현대의 교회는 종종 자본주의의 무한 경쟁이라는 정신 속에서 살아갈 때가 있다. 사도행전의 주요 메시지 중 하나는 교회의 연합과 일치이다. 이 연합을 위해서 성령은 선교적 그룹들 사이의 일치를 도모하시고 선교적 경쟁을 조정하는 역할도 하셨던 것으로 사도행전은 묘사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서로 경쟁하는가? 사도행전은 예수의 영이 비두니아가 아닌 마게도냐로 바울을 인도하셨다고 말씀하신다. 예수의 영은 불필요한 선교적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답지를 향하도록 바울을 이끄셨다. 우리의 미답지는 어디인가? 잘 보이지 않는 그늘, 혹은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으려는 척박한 곳은 어디인가? 교회가 경쟁하는 것은 단지 현대적인 현상은 아니다. 초기 교회의 여러 선교적 그룹들이 경쟁을 했다. 하지만 사도행전이 강조하는 것은 예수의 영이 이러한 경쟁을 조정하시면서,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은 곳으로 가도록 부르셨다는 것이다. 사도행전은 모든 교회가 선교를 위한 하나의 목적을 위하여 협력하고 있는 교회였다는 것을 강조한다. 필자는 각 교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개 교회들 사이의 "경쟁"이라는 측면을 사도행전의 관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제안한다.
[1] 제 2차 선교여행에서 바울의 여정의 재구성의 예는 다음을 보라. Glen L. Thompson and Mark Wilson, “The Route of Paul’s Second Journey in Asia Minor: In the Steps of Robert Jewett and Beyond,” Tyndale Bulletin 67 (2016): 217-246. 이 연구와 달리 필자는 바울이 비두니아로 가기를 노력하던 중 드로아로 방향을 바꾼 장소가 프루사로 여긴다. 프루사가 비두니아로 가는 길목과 갈림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톰슨과 우리슨의 주장과 같이 바울이 행로를 서쪽으로 변경한 도시가 프루사 보다 남동쪽에 위치한 도륄라이온(Dorylaion, Δορύλαιον)이 더라도 필자의 결론은 유효하다. 이 도시들의 위치는 위의 지도를 보라. 이에 대한 다른 연구는 다음과 같다: Robert Jewett, “Mapping the Route of Paul’s ‘Second Missionary Journey’ from Dorylaeum to Troas,” Tyndale Bulletin 48 (1997): 1-22.
[2] 대리석 운반을 위해서 상가리우스 강을 통하여 니코메디아(비두니아 지역의 항구도시)에 이르는 배편에 관하여 다음을 보라. J.B. Ward-Perkins, “Nicomedia and the Marble Trade,” Papers of the British School at Rome 48 (1980): 23-69 [28]. 상가리우스 강이 배편을 통한 물자가 오고 가기에는 좁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특히 Ben Russell, The Economics of the Roman Stone Trad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3), 138. 그러나 워드-퍼킨스는 상가리우스 강을 통한 물자 운반은 수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봄철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본다.
[3] 이 견해는 이미 19세기 후반에 호르트(F.J.A. Hort)가 주장한 것이다. 보다 상세한 논의는 다음의 논문을 보라. Colin J. Hemer, “The Address of 1 Peter,” The Expository Times 89 (1978): 239-243.
[4] 고전적인 해석에서 페르디난트 바우어(F.C. Baur)는 사도행전을 야고보, 베드로의 유대 기독교와 바울의 헬라 기독교의 변증법적 종합의 결과로 이해한다. 이러한 해석은 최근 학자들에게 거의 채택되지 않는다. 필자도 이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5] Dany Christopher, “The Spirit of Jesus in Acts 16:7: An Ethnographic Reading,”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New Testament 46 (2023): 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