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SBL 연례 학술대회 참관 보고서

목차

  1. [참관기] 선교적 해석학 포럼
  2. [트렌드 분석 1] 성서학의 디지털 전환: AI, 도구를 넘어 파트너로
  3. [트렌드 분석 2] '유대교 안의 바울(Paul within Judaism)'의 영향력
  4. [트렌드 분석 3] 트라우마

[참관기] 선교적 해석학 포럼

미셔널신학연구소는 2022년부터 매년 미국 성서학회(SBL) 연례 모임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이 학회의 산하 모임인 선교적 해석학 포럼(The Forum on Missional Hermeneutics)에 참여하는 것이며, 또한 현대 성서학과 신학의 동향을 확인하여 연구와 사역에 반영하기 위함입니다.

선교적 해석학 포럼에서는 세 개의 세션이 열렸습니다. 첫 번째 시간은 그렉 맥켄지(Greg McKenzie)의 신간 『참여의 해석학: 성경의 선교적 해석과 독자의 형성』(The Hermeneutics of Participation: Missional Interpretation of Scripture and Readerly Formation)을 다룬 패널 토의였습니다. 저자는 기존 신학적 해석이 갖는 교회 내부 지향성과 선교적 해석이 갖는 적용 중심의 한계를 지적하며, 신성화(Theosis), 체화된 서사성, 연대라는 신학적 개념을 통해 독자가 선교 현장에서 어떻게 텍스트를 신실하게 읽어낼 수 있는 존재로 빚어지는지를 규명하고자 했습니다. 리뷰 세션에서는 마이클 배럼(Michael Barram), 존 프랭키(John Franke), 보 림(Bo Lim)가 패널로 나서서 맥켄지의 기여와 한계에 대해서 논하였습니다.

두 번째 세션은 '트라우마를 고려한 선교적 해석학 탐구'(Exploring Trauma-Informed Missional Hermeneutics)를 주제로 했습니다. 과거 서구 중심의 선교 방식이 남긴 역사적 상처를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발제자 제니퍼 에이콕(Jennifer Aycock)은 제국주의와 백인성(Whiteness)이 아프리카에서의 성경 해석에 미친 영향을 다루었고, 데이비드 에반스(David Evans)는 흑인 신학의 관점에서 성경을 읽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이 세션은 발제 후 참가자들이 직접 성경 본문을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실질적인 적용점을 모색했습니다.

세 번째 세션은 '청바지를 입다: 풀뿌리 사회 변화를 위한 체화된 제자도'(Putting on Our Blue Jeans: Converting Missional Imagination into Embodied Discipleship for Grassroots Social Change)라는 주제로 드류 하트(Drew Hart)가 진행한 워크숍이었습니다. 하트는 서구 기독교 세계(Christendom)의 영향 아래 성경 읽기가 어떻게 현상 유지가 아닌 변화를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는지 설명했습니다. 그는 선교적 상상력이 비폭력 저항이나 지역사회 조직화 같은 구체적인 사회 변화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하트의 발제 이후에 참석자들은 성경 본문을 읽어 나가면서 발견되는 선교적 함의에 대해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현재 선교적 해석학 포럼은 고통받는 현실 세계에 어떻게 윤리적으로 응답하고 참여할 것인가 하는 '구체적 실천'을 그 중심축을 삼고 있습니다. 이는 성경 해석을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닌 독자의 존재론적 '형성' 과정으로 재정의하고, 서구 기독교 왕국을 바탕으로 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남긴 상처를 직시하는 독법을 제안하며, 나아가 강단을 넘어 비폭력 저항과 사회 정의를 위한 '체화된 실천(Embodied Praxis)'으로 나아갈 것을 촉구하는 흐름입니다. 이번 SBL에서 확인한 서구 학자들의 치열한 논의는, 결국 그들이 처한 구체적인 '삶의 자리(Locatedness)'에서 하나님의 선교에 성실하게 참여하려는 몸부림이었습니다. 제국주의의 역사와 인종 갈등, 탈기독교 현상은 그들이 마주한 선교적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질문은 우리에게로 향합니다. 미셔널신학연구소는 그들의 고민을 거울삼아, '대한민국'이라는 고유한 역사와 사회적 토양 위에서 어떻게 성경을 읽고 해석해야 할지를 고민해 나가고자 합니다.

선교적 해석학 포럼 세션

이어서 이번 SBL을 통해 확인한 성서학의 3가지 트렌드에 대해서 정리해 보고자합니다.

[트렌드 1] 성서학의 디지털 전환: AI, 도구를 넘어 파트너로

올해 SBL모임에서 감지된 가장 두드러진 지각 변동은 단연 '인공지능(AI)과 성서학의 결합'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디지털 도구를 연구 보조 수단으로 사용하는 차원을 넘어, 성서 연구의 방법론과 신학 교육의 패러다임 자체를 재편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연구 방법론의 변화: 직관에서 알고리즘으로

학자 개인의 직관에 의존하던 전통적인 비평 영역에 정교한 머신러닝과 자연어 처리(NLP) 기술이 깊숙이 도입되었습니다. 에릭 맥더미드(Eric McDermid)는 '찬양과 탄식의 지식 나무: 시편의 알고리즘 양식 비평(The Tree of the Knowledge of Praise and Lament: Algorithmic Form Criticism of the Psalms)'이라는 연구를 통해 시편 텍스트의 히브리어 단어를 품사로 치환한 뒤 컴퓨터가 탄식시와 찬양시를 구분해내는 실험적 방법론을 제시하며 알고리즘 양식 비평의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또한 데이비드 하미도비치(David Hamidovic)는 '머신러닝과 고문서학: 사해 사본에 대한 통찰(Machine Learning and Palaeography: Some Insights in the Dead Sea Scrolls)' 세션에서 쿰란 사본(1QS, 4Q175)의 미세한 필체를 머신러닝으로 분석하여 서기관을 식별하는 연구를 소개했는데, 이는 인간의 눈으로 판별하기 힘든 고문서학의 영역을 AI가 어떻게 혁신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텍스트 분석에서도 폴 로버트슨(Paul Robertson)은 '잠재 디리클레 할당(LDA)' 기법을 사용하여 바울 서신의 주제적 연결성을 통계적으로 분석했습니다. 이와 함께 스티븐 칼슨(Stephen C. Carlson)은 'AI와 신약 본문비평(AI and New Testament Textual Criticism)' 발표를 통해 LLM의 활용 가능성을 타진했습니다. 그는 잘 설계된 프롬프트를 통한 LLM 활용이 필사 경향이나 언어 패턴 분석에는 유용하지만, 정밀한 정량적 방법론인 CBGM(Coherence-Based Genealogical Method)을 대체하기보다는 보완하는 역할임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사본 이미지의 직접 전사(transcription)에 있어 현재(연구 당시) AI 모델의 한계가 지적되었으나, 며칠 전 발표된 Gemini 3.0 Pro 등 최근 급격히 향상되고 있는 AI의 비전(Vision) 인식 성능을 고려할 때 이 장벽 또한 조만간 허물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교육 현장의 전환: 금기에서 비평적 파트너로

교육 현장에서도 생성형 AI를 금기시하는 단계를 지나, 이를 성서 문해력을 높이는 '튜터'이자 '비평 파트너'로 적극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합니다. 존 힐튼(John Hilton)은 '두루마리에서 스크린으로: 챗GPT로 성경 가르치기(From Scroll to Screen: Teaching Scripture with ChatGPT)'라는 발표를 통해 ChatGPT를 활용한 구체적인 교수법을 제안했는데, 특히 AI가 생성한 주석이나 설교의 오류를 학생들이 직접 찾아내고 비평하게 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신학적 정확성을 훈련시키는 방식은 큰 시사점을 줍니다. 이와 함께 헬렌 달레어(Hélène Dallaire)와 짐 그린버그(Jim Greenberg)는 '성서 히브리어 교수 학습을 위한 생성형 AI 도구 활용(Using Generative AI Tools for Teaching and Learning Biblical Hebrew)' 세션에서 AI를 활용해 고전어 학습의 장벽을 낮추는 구체적인 툴과 사례를 공유하며, AI가 문법 설명부터 구문 분석까지 돕는 개인 교사의 역할을 수행하는 미래 교육 환경을 예고했습니다.

신학적 성찰: 데이터 너머의 권위와 윤리

SBL과 함께 열리는 미국종교학회(AAR) 세션에서는 기술적 활용을 넘어선 본질적이고 윤리적인 신학적 성찰이 깊이 있게 다루어졌습니다. 유누스 도간 텔리엘(Yunus Dogan Telliel)은 '쿠란의 AI화: KuranGPT, 혹은 LLM 시대의 번역 가능성(AI-ification of the Qur'an: KuranGPT, or Translatability in an Age of LLMs)' 발표를 통해 확률에 기반한 AI가 신성한 텍스트를 재생산할 때 발생하는 권위와 번역 가능성의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또한 가톨릭과 성공회 전통이 AI의 자율성, 행위자성, 그리고 관계적 지능의 문제를 어떻게 신학적으로 수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비교 연구가 진행된 '가톨릭 AI: AI에 대한 가톨릭과 성공회의 접근과 실험(Catholic AI: Catholic and Anglican Approaches and Experiments with AI)' 세션은 기술 발전 속에서 신학이 감당해야 할 윤리적 책임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성서학에서의 AI 활용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있으며, 귀기울여야야 할 지점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다만 과학적 방법론을 추구하는 연구 영역에서는 AI의 도입이 이미 시작되었으며, 급격히 가속화 될 것임을 전망하기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 성서/신학계에서도 AI에 대한 윤리적 문제 제기를 넘어 본격적인 연구 활용에 대한 성과들을 공유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AI와 성경 교육 세션

[트렌드 2] '유대교 안의 바울(Paul within Judaism)'의 영향력

바울 연구에 있어 '유대교 안의 바울(Paul within Judaism)' 관점이 더 이상 학계의 주변부가 아닌 명백한 주류로 자리 잡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 '새 관점'이 바울 신학의 지형을 흔들었다면, 이제는 '급진적 새 관점'이라고도 불리는 이 관점이 학계의 중심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영미 바울 학계는 바울을 율법에 충실한 1세기 유대교인으로 철저히 재위치시키며, 새로운 거대 담론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본문 연구로 나아가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짧지 않은 역사와 주창자

'마크 나노스가 지난 30여년간 신약학계에 끼쳐온 영향(Mark Nanos's Impact on New Testament Studies 30 Years On)'이라는 주제로 열린 세션에서는 『로마서의 미스터리』(The Mystery of Romans) 출간 이후 30년간 마크 나노스가 바울 연구에 끼친 거대한 영향을 평가했습니다. 사업가였던 마크 나노스는 1995-96년 SBL에서 로마서의 '약한 자'에 관한 논문을 예기치 않게 발표하였는데, 이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유대교 안의 바울'의 주창자 역할을 맡아오게 되었습니다. 그의 주장에 여전히 설득되지 않는 지점들이 있을지라도, 세션의 제목처럼 그가 신약학계에 미쳐온 영향은 현재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망누스 제터홀름(Magnus Zetterholm)의 사회로 열린 이 세션 말미에는 내년에 출간 예정인 마크 나노스 헌정 논문집이 깜짝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담론의 진전

'유대교 안의 바울 관점'을 하나의 '학파'로 묶을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있을 정도로 스펙트럼은 다양합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을 1세기 유대교의 연장선에서 이해하려는 관점에서 출발하여 담론이 학자들에 의해 계속 확장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두 개의 북리뷰 세션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매튜 노벤슨(Matthew Novenson)의 책 『역사의 끝에 선 바울과 유대교』(Paul and Judaism at the End of History) 북리뷰 세션은 바울의 종말론적 사상을 1세기 유대교의 역사적 맥락 안에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파고들었습니다. 이 책에서 노벤슨은 바울의 핵심 사상은 반율법주의나 반민족중심주의가 아니며, 오히려 바울은 이방인과 유대인의 이분법적 인류학을 전제했다고 말합니다. 바울의 핵심 사상은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 죄와 죽음을 종식시키고 부활과 새 창조를 이루셨다는 것이며, 이로써 이방인도 이스라엘의 복된 운명에 참여하되었으나 이스라엘(혹은 새이스라엘) 자체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요점입니다.

폴 슬로언(Paul T. Sloan)의 신간 『예수와 모세 율법』(Jesus and the Law of Moses)의 북리뷰 세션 또한 주목할 만했습니다. 이 책에서 슬로언은 복음서의 예수가 율법을 폐기하거나 대체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종말론적 맥락에서 율법을 권위 있게 해석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그동안 복음서의 율법에 대한 학계의 해석이 유대교의 율법주의, 행위-의라는 잘못된 전제 아래 진행되어 왔다고 비판합니다. 그는 예수를 회복-종말론적 틀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복음서의 율법 논쟁은 율법 자체의 거부가 아니라 해석에 관한 유대교 내부의 토론임을 주장합니다.

특히 슬로언의 책은 '유대교 안의 바울' 관점이 이제 바울 서신을 넘어 신약성경의 다른 책들을 연구하는 것에도 확장되고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세션명에 'within in Judaism'을 붙이는 것이 지난 몇 년간 SBL에서 유행처럼 번지기도 하였는데, 향후 몇 년동안 슬로언의 작품과 비슷한 단행본들이 상당수 나올 것을 전망하게 합니다.

개별 본문 연구로의 확장

'유대교 안의 바울 관점'을 세부 본문 해석에 적용하려는 작업도 계속되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폴 슬로언은 "합법적인 무법: 고린도전서 9장에서의 토라와 바울의 승인된 선교(Lawful Lawlessness: The Torah and Paul's Authorized Mission in 1 Corinthians 9)"에서, 바울이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을 벗어난 파격이 아니라, 토라 자체가 허용하는 선교적 전략 내에서의 '합법적인' 행위였음을 주장했습니다. 이는 바울의 유연성을 율법 폐기가 아닌 율법의 목적 성취를 위한 랍비적 지혜로 재해석한 것입니다.

벤자민 프로스타드(Benjamin Frostad)는 "할례는 하나님의 명령이 아닌가?: 고린도전서 7:19-19와 성인 이방인 할례에 대한 바울의 할라카적 입장(Is Not Circumcision a Commandment of God? 1 Corinthians 7:18–19 and Paul's Halakhic Position on Adult Gentile Circumcision)"이라는 제목의 발표를 통해, 고린도전서 7:19("할례 받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요")이 바울의 율법 폐기 선언이 아님을 논증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바울이 '성인 이방인 개종자'에게 할례가 필수적인가에 대한 당대 유대교 내의 논쟁에서, "이방인은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특정 할라카적 입장을 취했음을 밝혀내고자 했습니다. 즉, 바울은 율법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는 할례가 '하나님의 계명'으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법적 유권해석을 내린 랍비로 이해하려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수십년 전부터 차근히 지지기반을 쌓아온 하나의 담론이 그 영향력을 광범위하게 펼쳐가고 있는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이러한 흐름에는 서구인들이 갖고 있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부채감이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그것이 정치적으로는 '반유대주의'(anti-semitism), 신학적으로는 '대체신학'(supersessionism)에 대한 비판으로 나타나고 있음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현대 서구 신학계의 중요한 흐름으로서, 이번에 새로 제2판이 나온 크리스 라이트(Christopher C. Wright)의 『하나님의 선교』(The Mission of God)에 '선택과 대체신학'(Election and Supersessionism)이라는 챕터가 새롭게 추가된 것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일반적인 목회자의 입장에서는 새 관점도 소화가 쉽지 않은데, 급진적 새 관점까지 따라가려니 부하가 걸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큰 흐름이 된 만큼 국내 학계에서도 '유대교 안의 바울' 담론에 대해 적극적으로 연구해 주실 것을 기대해 봅니다.

Matthew Novenson 북리뷰 세션

[트렌드 3] 트라우마

이번 2025년 SBL 연례 학술대회는 '트라우마(Trauma)'가 성서학의 주요한 방법론적 화두로 자리 잡은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발표자들은 성경 본문을 제국주의적 폭력과 재난을 겪은 공동체의 '생존 기록(Survival Literature)'으로 읽어내려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거 개별적으로 다루어지던 제국 연구, 트라우마 이론, 탈식민주의가 상호 교차하며, 텍스트의 이면을 현대의 맥락에서 재해석하려는 흐름이 보입니다.

구약 예언서와 트라우마

'이스라엘 예언 문학(Israelite Prophetic Literature)' 분과에서는 '트라우마와 유머(Trauma & Humor)'를 주제로 세션을 구성했습니다. 발표자들은 극한의 트라우마 상황에서 나타나는 유머와 조롱을 재해석하고자 했습니다. 아론 도르시(Aaron Dorsey)는 '당신은 무엇 때문에 우는가: 호세아, 트라우마, 그리고 조롱(You're Crying over What: Hosea, Trauma, and Ridicule)'이라는 발표문에서 호세아 1-2장의 결혼 은유를 다루었습니다. 이 발표는 호세아의 행동을 즐거움이 배제된 '웃음 없는 조롱(Unlaughter)'으로 설명했습니다. 이는 아시리아 제국의 위협 앞에서 정체성을 잃어가는 북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수치심을 유발하여 내부 결속을 다지게 하려는 '사회적 교정(Social Corrective)' 장치이자 일종의 트라우마적 공연이었다는 분석입니다.

리즈 보스(Liz Boase)는 '그게 재미있었던 적이 있는가? 유머와 트라우마 연구의 교차점에서 본 예레미야의 상징적 행동(Was It Ever Amusing? Exploring Jeremiah's Symbolic Action Reports at the Intersection of Humour and Trauma Studies)'이라는 발표를 통해, 예레미야서에 나타난 풍자가 단순한 위트가 아니라 파국적 재난을 정신적으로 견디기 위한 생존 기제였음을 논증하는 내용을 준비했습니다.

또한 애비게일 보도(Abigail Bodeau)는 '바보 요나(Jonah as a Fool)'라는 제목의 발표를 통해 불복종과 심판의 긴장을 유머로 풀어내는 방식을, 안나 시게스(Anna Sieges)는 '미가서의 애통과 웃음(Lament and Laugher in Micah)'을 통해 비탄 속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의 기능을 탐구했습니다. 이처럼 예언자들의 난해한 언어를 인간적 생존의 몸부림으로 보려는 시도가 이루어졌습니다.

고통하시는 하나님

'구약 신학(Theology of the Hebrew Scriptures)' 분과 역시 '트라우마에 대한 신학적 응답(Theological Responses to Trauma)'이라는 주제로 열렸습니다. 라이언 히긴스(Ryan Higgins)는 '절멸의 언어: 말과 침묵의 경계로서의 성서적 탄식(The Language of Annihilation: Biblical Lament as the Border between Speech and Silence)'이라는 발표에서, 성서의 탄식이 단순한 기도를 넘어 무너져가는 세계를 붙들려는 처절한 언어적 몸부림임을 규명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헬렌 벅월터(Helen Buckwalter)는 '시적 파토스: 예레미야 10:19-22에 나타난 하나님의 고통(Poetic Pathos: The Suffering of God in Jeremiah 10:19–22)'을 통해 심판자로서의 하나님이 아닌 자기 백성의 멸망 앞에서 함께 고통당하시는 하나님의 수난을 드러내는 신학적 전환점을 제시했습니다.

마샬 존스(Marshall Johns)와 애슐리 깁(Ashleigh Gibb)은 '딸 시온의 자율성 회복: 성적으로 폭력적인 텍스트에 대한 트라우마 인지적 연구(Restoring Daughter Zion's Autonomy: A Trauma-Informed Study of Sexually Violent Texts)'를 통해, 텍스트가 묘사하는 고통을 재해석함으로써 피해자의 자율성(Autonomy)을 회복하려는 윤리적 독법을 제안했습니다.

캐서린 델(Katharine Dell)은 '어떤 사람이 욥과 같은가?(욥 34:7): 예레미야애가 3장과 욥기의 엘리후 연설 간의 상호텍스트성("What Man Is Like Job?" (Job 34:7): Intertexts between Lamentations 3 and the Speeches of Elihu in the Book of Job)' 발표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의 고통이 서로의 언어를 빌려 증언하고 있음을 밝혀 고통의 연대가 갖는 치유적 힘을 시사했습니다. 이러한 논의들은 구약학이 고통받는 인간과 함께 우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공감의 신학'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주변부를 위한 해석학

나아가 트라우마 연구는 치유와 회복을 위한 실천적, 탈식민주의 해석학으로 확장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앞선 글에서 언급했던 대로, 선교적 해석학 포럼 세션에서는 '트라우마를 고려한 선교적 해석학(Exploring Trauma-Informed Missional Hermeneutics)'이라는 주제가 다루어졌습니다. 이 세션에서는 과거 서구 제국주의 선교가 피식민지나 아프리카계 미국인 등에게 남긴 상처를 다루며, 성서 해석이 희생자의 목소리를 듣고 연대하는 행위가 되어야 함을 논의했습니다.


이처럼 '상처의 해석학(Hermeneutics of Wounds)'이 현대 성서학의 중요한 흐름임을 볼 수 있습니다. 식민지 경험과 전쟁, 급격한 사회 변동을 겪은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 성경을 통해 단순히 승리와 축복만을 읽어내는 것을 넘어 텍스트 이면에 흐르는 비탄과 신음을 읽어내는 작업이 필요해 보입니다. 보수적인 학자들과 목회자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주제이긴 합니다. 하지만 선교적인 목적을 위해서라도 성경의 인물들이 겪었던 고통이 오늘날 이웃들의 아픔과 맞닿아 있음을 인지하고, 서구 신학의 틀을 넘어 우리의 시각으로 성경을 읽는 해석이 요청됩니다. 제국의 주변부에서 기록된 성경이 오늘날의 주변부를 보듬는 치유의 언어로 기능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Trauma Informed Missional Hermeneutics 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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