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제2판, 1922)
칼 바르트 / 복있는사람 / 2017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은 자유주의 신학의 극복이라는 역사적 의미, 성경의 신학적 권위 복원이라는 신학적 의미, 그리고 이후 20세기 모든 바울 신학 논쟁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학문사적 의미를 모두 동시에 지니는 저작으로 학계에서 널리 평가된다. 로마서 주석 초판(1919)에서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의 토양에서 자란 종교사학파와 신학적 사회주의의 영향을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하나님의 현존이 역사 안에서 긍정적으로 움직인다는 뉘앙스를 나타낸다. 하지만 이 한글번역의 원본인 2판에서 그는 로마서 전체를 인간의 모든 종교적, 도덕적, 문화적 가능성에 대한 하나님의 철저한 "아니오(Nein)"와 그 "아니오"를 통과하여 주어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예(Ja)"의 변증법으로 읽어낸다. 그렇기에 바르트에게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바울의 선언(로마서 1:16-17)은 인간의 종교심을 고양하거나 도덕적 진보를 촉진하는 메시지가 아니라 영원이 시간의 수평선 위로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종말론적 사건의 선언이다. 복음은 역사 안에서 점진적인 발전을 통해 도달하는 이상이 아니라 인간 역사의 철저한 부정 가운데 표현된 초월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주권적 개입이다. 바르트는 인간의 철저한 부정 속에서 하나님의 긍정이 시작된다는 이 역설적 원리로 로마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밀고 나간다. 바르트에 의하면 율법의 역할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음을 폭로하는 것이며(로마서 1-3장), 믿음과 칭의는 인간의 심리적 결단이나 종교적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일방적으로 수립하는 관계이다(로마서 4-5장). 그리고 죄와 사망은 개인의 도덕적 실패가 아니라 인간 실존 전체를 장악하는 세력이며(로마서 6-7장), 성령 안에서의 자유는 인간적 가능성의 실현이 아니라 그 가능성의 완전한 부정 위에 하나님이 새롭게 여는 실재이다(로마서 8장). 비록 전통적 주석의 기준으로는 역사적 엄밀성이 부족하다고 평가될 수 있지만,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은 자유주의 신학의 시대에 구원을 초월적 하나님의 일방적 개입으로 읽어낸 신학적 해석의 중요한 이정표로 남아 있다.
C.E.B. 크랜필드의 로마서 주석 (상 1975, 하 1979)
C.E.B. 크랜필드 / 로고스 / 2003 (1985)
이 책은 1985년에 나온 크랜필드의 단권 주석을 번역한 것으로, 이 단권 주석은 1975년과 1979년에 출판되었던 크랜필드의 ICC(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로마서 주석 상, 하를 요약한 것이다. 이 ICC 주석이 20세기 영어권 최상급 로마서 주석으로 손꼽히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크랜필드는 치밀한 그리스어 문법 분석을 통해 본문의 문법적 미묘함과 신학적 함의를 탁월하게 포착해낸다. 그리고 본문 해석의 가능한 대안들을 체계적으로 망라하여(고대부터 현대까지 약 500권의 영어, 라틴어, 독일어, 불어 저작들을 직접 인용) 냉철한 논리로 각 입장의 장단점을 분석함으로써 본문의 해석적 지형을 한눈에 보여준다. 이러한 학문적 노력에 신학적 통찰과 경건까지 발견된다는 점은 이 주석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크랜필드의 로마서 해석은 신학적 노선에서 개혁주의 전통에 서 있지만(특히 "하나님의 의", 칭의의 원리, 율법의 역할에 대한 해석), 수많은 호의적인 바르트 인용은 칼 바르트가 그에게 끼친 신학적 영향력을 암시한다. 특히 크랜필드가 자신을 훌륭한 칼빈주의자라 칭하면서 다만 바르트가 수정한 선택교리를 따를 뿐이라 말한 것은 바르트의 영향력이 집중된 영역을 알려준다. 그러나 해석적 관점에서 두 사람은 중요한 차이를 보인다. 바르트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무한한 질적 차이를 해석의 공리로 삼았다면, 크랜필드는 구원사의 연속성에 무게를 둔다. 바르트가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역사의 수평선을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종말론적 침입으로 이해하여 이스라엘의 구원사적 연속성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키고, 율법을 주로 인간의 한계를 폭로하는 부정적 기능으로 보았다면, 크랜필드는 그리스도 사건을 이스라엘을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이 온 인류를 향해 성취된 구원사의 정점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율법 역시 그 연속성 안에서 '신자의 삶을 인도하는(율법의 제3용도)' 하나님의 선한 선물로 적극적으로 긍정한다. 이러한 구원사적 이해와 율법의 긍정적 역할에 대한 강조는 E. P. 샌더스 이후 제임스 던과 톰 라이트로 이어지는 '바울에 관한 새 관점'과 흥미로운 논쟁적 접점을 이룬다. 새 관점 역시 율법을 단순한 행위 구원의 도구로 보는 전통적 루터교적 독해를 거부하고, 바울을 유대교의 구원사적 맥락 안에서 읽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ICC 주석은 출간 시점상 새 관점 논쟁을 본문에 직접 반영하지는 못했다. 다행히 크랜필드의 이후 논문들에서 새 관점에 대한 그의 비판적 입장이 논증되는데, 그는 특히 "하나님의 의"의 해석과 칭의의 법정적 성격을 둘러싼 쟁점에서 새 관점과 날카롭게 갈라진다. 위 번역서의 원본인 크랜필드의 단권 주석은 그리스어 본문을 직접 다루지 않고 라틴어, 독일어, 불어 인용문도 생략했으며 ICC 주석의 핵심 해석적 결론들과 신학적 통찰들만을 대중들이 읽기 쉽게 간결하게 담아내고 있다. 결론적으로 크랜필드의 로마서는 본문의 해석적 지형 전체를 가장 정밀하게 펼쳐 보이는 20세기 영어권 주석의 표준으로 남아 있으며, 새 관점 이후의 논쟁은 다른 주석으로 보충해야 하지만 그 정밀함을 대신할 책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로마서 – 로마인들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에 대한 성경 주석 HTS, 4판 (1980)
에른스트 케제만 / 알맹e / 2024
에른스트 케제만의 로마서 주석(초판 1973, 4판 1980; 영역본 1980)은 20세기 로마서 연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주석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주석의 핵심 공헌 중 하나는 "하나님의 의"를 개인에게 전가되는 신분이나 법정적 지위가 아니라, 인간을 사로잡고 지배하는 주권적 권능으로 재정의한 데 있다. 케제만에게 구원이란 죄·사망·율법이라는 적대적 세력에게 찬탈당한 피조물 전체를 하나님이 다시 탈환하시는 지배권의 교체를 의미한다. 이 우주적 전투와 궁극적 승리는 로마서 8장의 신음하는 피조물에까지 확장된다. 케제만은 하나님의 구원을 이처럼 우주론적이고 종말론적으로 묘사하며 이를 '묵시론적' 사상이라고 명명한다. 이것은 구원을 인간 개인의 내면적이고 실존적 변화로만 환원하려 했던 스승 불트만의 '실존론적 바울 해석'에 대한 명시적 반정립이었다. 그런 점에서 케제만의 주석은 단순한 신학적 취향의 발로가 아니라, 시대의 주류에 맞선 고도로 논쟁적인 기획으로 읽힌다. 하지만 기술 방식에서 볼 때 이 책은 몇 가지 분명한 한계를 지닌다. 우선 N. T. 라이트가 지적했듯, 진정한 의미의 본문 주석서라기보다는 로마서 본문을 징검다리 삼아 논증하는 '신학 논문'에 더 가깝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또한 신학적 논의와 문법적 주석이 뚜렷한 표지 없이 뒤섞여 있어 가독성이 낮고, 전후 독일 루터교의 특수한 신학적 맥락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어 그 배경을 공유하지 않는 현대 독자에게는 상당한 진입 장벽이 된다. "하나님의 의"라는 하나의 열쇠가 주석 전체를 지배하다 보니, 케제만 자신이 구사하는 철저한 역사비평적 방법론과 그가 도달한 서구 루터교적 신학 결론 사이의 긴장도 충분히 해소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는 비판도 있다. 전체적으로 케제만의 주석은 독창적인 비전과 묵시론적 통찰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본문 주석의 정밀성과 접근성 측면에서는 크랜필드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거시적 비전을 보여주는 케제만의 주석과 미시적 엄밀함을 자랑하는 크랜필드의 주석을 상호보완적으로 사용할 것을 추천한다.
WBC 로마서 (상)(하) (1988)
제임스 던 / 솔로몬 / 2005, 2013
제임스 던의 로마서 주석은 '새 관점'을 로마서 전체에 체계적으로 적용한 최초의 본격적인 주석이다. 그의 정밀한 그리스어 절 단위 분석과 방대한 제2성전기 유대 문헌 활용은 탁월한 석의적 성취를 보여주며, 이는 새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 보수적 학자들조차 높이 평가하는 부분이다. 이 주석의 독특함은 로마서 전반부와 후반부 모두에서 선배 학자들의 해석적 유산을 상당 부분 이어받으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결론에서는 과감히 그로부터 갈라선다는 데 있다. 로마서 1-4장에서 던은 크랜필드와 연속성을 유지한다. 인간의 보편적 죄성에 대한 진단, 그리고 "하나님의 의"의 뿌리를 구약의 언약적 신실성에서 찾는다는 배경 인식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개념이 도달하는 최종 결론에서는 결정적으로 갈라선다. 크랜필드에게 '의'란 온전한 율법 준수로 얻는 법정적 지위이며,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순종을 신자에게 전가하심으로써 이 지위를 법정적으로 선언하신다. 반면 던에게 '의'란 정체성 표지(할례, 음식법, 안식일 등)의 준수로 유지되고 확인되는 언약 백성의 일원됨이며, 하나님은 유대인의 정체성 표지가 아니라 믿음을 근거로 이방인과 유대인 모두를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선언하신다. 또한 던은 케제만과 비슷하게 로마서 5-8장에서 죄와 사망을 인간 안에 거하는 외적 침입자처럼 다루고, "육(sarx)"을 단순한 도덕적 성향이 아니라 옛 시대에 속박된 존재 양식으로 규정한다. 이 지점만 보면 케제만의 우주론적 문법과 "권세" 범주를 그대로 계승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케제만과 달리, 던은 이 묵시적이고 우주론적인 악의 이해로 언약과 인간론을 해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이스라엘의 언약과 율법이라는 사회-언약사적 구조 안에 단단히 정박시킨다. 결국 던의 주석은 크랜필드적 인간론과 케제만적 우주론 모두와 부분적으로 결별하면서, 이를 '언약사적 서사' 안으로 재편한 독창적인 절충적 종합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20세기 후반 로마서 연구의 향방을 완전히 갈라놓은 논쟁적 기념비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앵커 바이블 로마서 (1993)
조셉 피츠마이어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15
피츠마이어의 로마서 주석은 앵커 바이블 시리즈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아람어 문헌과 사해사본 연구로 저명한 가톨릭 신약학자가 로마서 저작 정황의 역사적 재구성, 사본 전승 비교를 통한 본문비평, 바울이 차용한 기존 전승의 식별, 그리고 제2성전기 유대 문헌·쿰란 문헌과의 광범위한 대조까지 역사비평적 방법을 총동원하여 로마서 전체를 파헤친 800쪽 분량의 묵직한 단권 저작이다. 이 주석의 가장 큰 미덕은 학문적 엄밀함과 방대한 참고문헌이며, 특히 곳곳에 배치된 짧은 보론(excursus)들은 그 자체로 책값을 하고도 남을 만큼 정밀하다고 평가받는다. 흥미로운 점은, 가톨릭 학자의 저작임에도 칭의, 율법, 은혜 같은 핵심 주제에 대한 해석이 오히려 종교개혁 전통에 더 가깝게 읽힌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주석은 개신교 학계에서 특히 환영받았으며, 역사비평적 방법을 공유하는 가톨릭 학자들 사이에서도 높이 평가받았다. 다만 그의 법정적 칭의 해석은 트리엔트 전통의 교의적 틀을 고수하는 가톨릭 신학자들에게는 여전히 논쟁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책의 한계 중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은 1993년 출간 시점에 이미 확산되고 있던 E. P. 샌더스와 던의 '새 관점'을 사실상 진지하게 다루지 않고 지나쳤다는 점이다. 역사-문헌비평적 정보는 압도적으로 풍부하지만 그것을 성경신학적 종합으로 끌어올리는 데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라는 평도 있다. 결론적으로 피츠마이어의 로마서는 정밀한 주석적 정보량과, 가톨릭 학자로서는 이례적인 법정적 칭의 해석에서 독보적이지만, 새 관점 논쟁 이후 로마서 연구의 지형을 재편하려는 야심은 크지 않은, 신중하고 백과사전적인 참고서로 평가된다.
로마서 –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복음 (1994)
존 스토트 / IVP / 2019
스토트의 로마서는 BST 시리즈가 표방하는 세 원칙—본문에 대한 진지한 천착, 적용 중심성, 가독성—을 성공적으로 구현했다는 평가를 널리 받는다. 로마서를 28개 단락으로 나누어 곳곳에 "설교의 갈고리"를 심어놓은 구성, 아우구스티누스부터 크랜필드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주석사와의 대화, 그리스어 지식 없이도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내는 서술 방식은 이 주석의 매력으로 꼽힌다. 스텐달·샌더스·던의 새 관점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고, 제4에스라서와 랍비 문헌을 근거로 유대인의 자기 의를 논증하며 정면으로 반박한 것은 이 논쟁 자체를 거의 무시한 동시대의 피츠마이어와 대조를 이룬다. 스토트는 자신의 해석 틀 전반을 두고 정통 개혁주의 전통의 주류에 속한다고 자평한다. 그러나 로마서 7장의 "나"를 "성숙한 신자"로 해석했던 자신의 옛 입장을 철회하고 "성령 없는 구약 시대 신자"라는 절충안으로 선회한 것은 크랜필드가 고수한 전통적 해석에서 벗어나는 움직임이다. 스토트의 기술방식에 대한 지적 중 하나는 그가 로마 교회 내 유대인과 이방인의 갈등이라는 구체적 역사적 정황보다 일반적 신학 진리를 부각하는 경향을 보이며 대립되는 해석들을 절충해 봉합하는 경향(예: "하나님의 의") 탓에 실제 학문적 격론과 긴장을 지나치게 매끈하게 다림질한다는 것이다. 비슷한 해석적 틀을 취하는 슈라이너와 무에 비해 학문적 치밀함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와 평신도가 가장 먼저 집어드는 표준 입문서로서의 역할로는 손색이 없다.
A Rereading of Romans: Justice, Jews, and Gentiles (1994)
스탠리 스토워스 / Yale University Press / 1994
스토워스의 이 책은 신학 주석이 아니라 헬레니즘 수사학과 도덕철학 전문가가 시도한 역사적 재구성으로,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굳어진 내면화되고 개인화된 로마서 독법 전체를 거부한다. 그는 이 편지가 유대인이 아니라 오직 이방인 독자만을 겨냥한다고 주장하며, 그 핵심 도구로 고대 수사학의 "인물화된 발화(prosopopoeia)"(저자가 자기 목소리가 아니라 다른 인물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는 기법)를 로마서 연구에 재도입한다(오리게네스가 이미 롬 7장에 적용했던 독법이다). 이렇게 읽으면 2:17 이하의 대화 상대는 위선적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에게 토라 준수를 권하는 가상의 유대인 교사가 되고, 7:7-25의 "나"는 바울 자신도 이스라엘도 아니라 율법으로 자기 지배를 이루려다 실패하는 이방인의 곤경을 극화한 수사적 발화가 된다. 이는 크랜필드의 신자 바울, 무의 유대인 바울, 슈라이너의 아담적 조건을 고백하는 바울, 스토트의 성령 없는 구약 시대 신자와 구별되는 또 하나의 독법이다. 그의 핵심 논지는, 그레코-로만 도덕철학이 최고 목표로 삼던 "정념에 대한 자기 지배"를 이방인은 토라 준수로 얻을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신실함(스토워스는 이를 죄인에게 자신을 낮추어 맞추는 "적응성"으로 이해한다)을 모방함으로써만 얻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로마서는 인간 죄성에 대한 해답도, 구원의 종교에 대한 선언도 아니다. 이 대담한 재구성은 로마서 해석의 지형을 뒤흔든 도전으로 평가받았고, 그가 되살린 인물화된 발화 개념은 훗날 쥬웻이 롬 7장 해석에 차용할 만큼 영향력을 발휘했다. 다만 쥬웻은 로마 교회를 유대인과 이방인의 복합 공동체로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결론을 달리한다. 스토워스가 이렇게 그레코-로만 수사학이라는 하나의 렌즈로 로마서 전체를 읽어내는 방식에 대해 렌즈 밖의 것들, 특히 바울의 묵시적 유대교 배경을 놓친다는 비판이 뒤따랐는데, 이것은 케제만의 주석이 "하나님의 의"에 대한 묵시론적 개념을 단일 렌즈로 사용함으로 다른 차원들을 포착하지 못했던 것과 비슷한 해석학적 문제다. 또한 유대인은 그리스도 없이 토라를 통해 하나님과 관계한다는 함의(이른바 '두 언약' 독법)가 로마서 9-11장과 복음의 보편적 능력에 대한 바울의 논증을 무력화한다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로마서를 1세기 독자의 눈으로 다시 읽게 만드는 역사적 상상력에서 독보적이지만, 그 재구성을 어디까지 받아들일지는 독자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전통적 독법의 가장 급진적인 대안 중 하나다.
NICNT 로마서 (개정판) (1996, 2018)
더글라스 무 / 솔로몬 / 2022
더글라스 무의 NICNT 로마서는 출간 이후 영어권에서 최고의 로마서 주석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존 머레이의 기존 NICNT 주석을 대체할 만큼 폭넓은 신뢰를 얻은 저작이다. 이 주석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히는 것은 각 본문마다 가능한 해석 대안들을 빠짐없이 제시한 뒤 자신의 입장과 그 근거를 명확히 밝히는 무의 서술 방식이다. 또한 그리스어 주해는 각주에 배치하고 본문은 그리스어를 몰라도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한 점에서 학문적 정밀성과 대중적 접근성을 동시에 갖추었다는 평을 받는다. 2018년 개정판은 톰 라이트의 『바울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비롯한 지난 20여 년간의 바울 신학 논쟁을 폭넓게 반영했다. 무가 칭의를 법정적 선언으로 이해하고, 이신칭의와 오직 은혜를 로마서 해석의 중심 축으로 삼는 것은 그의 개혁주의적 구원론을 반영한다. 새 관점의 기여(제2성전기 유대교에 대한 재조명)는 인정하면서도, "율법의 행위"를 정체성 표지로 축소하는 던 식의 독법에는 비판적으로 대응하는 점도 그가 가진 전통적인 이신칭의 이해를 나타낸다. 그러나 로마서 7장의 "나"에 대한 무의 해석은 전통적이지 않다. “나"를 신자의 상태를 대표하는 그리스도인 바울의 자전적 표현으로 보는 크랜필드의 전통적 해석과 다르게 무는 “나”를 율법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의 상태를 대표하는 유대인 바울의 자전적 표현으로 읽는다. 로마서 9장의 신적 주권과 인간 책임 문제에 대해서도, 무는 이 "영원한 역설"이 "이 세상에서는 해결이 불가능해 보인다"며, 더 확고한 칼뱅주의적 예정론을 취하는 슈라이너보다 신중하고 열린 태도를 보인다. 전체적으로 무의 로마서는 철저한 주해와 신학적 균형을 겸비한 복음주의 진영의 표준 참고서로 널리 평가된다.
BECNT 로마서 (개정판) (1998, 2018)
토마스 슈라이너 / 부흥과개혁사 / 2012
슈라이너의 BECNT 로마서는 1998년 초판 출간 이후 복음주의 진영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로마서 주석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바울의 논증을 절 단위가 아니라 편지 전체의 논리 흐름 속에서 추적하는 해석이 호평을 받으며 그리스어 본문에 대한 정밀한 주해를 각주에 효과적으로 배치해 본문의 가독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학문적 엄밀함을 유지한다는 점도 돋보인다. 그리고 라이트를 비롯한 새 관점 학자들과 대화하며 정중하지만 비판적인 평가를 내린다. 2018년 개정판에서 슈라이너는 20년간의 학문적 발전을 반영하면서 "하나님의 의"에 대한 해석을 바꾸는데, "하나님의 의"를 "변혁적이면서 법정적"으로 보았던 초판의 입장에서 "순전히 법정적"이라는 입장으로 선회하며, 로마서 2, 5, 7장 해석도 부분적으로 수정한다. 이런 변화는 한층 더 개혁주의적인 방향으로의 신학적 전환으로 읽힌다. 로마서 7장 해석에 있어서도 "나"를 이스라엘의 상태에 대한 유대인 바울의 자전적 표현으로 읽는 무와 달리, 슈라이너는 “나”를 아담적 인류가 공유하는 인간론적 조건에 대한 그리스도인 바울의 자전적 표현으로 읽음으로써 전통적인 입장에 더 가까이 선다. 로마서 9장의 예정론에서도 그는 더 확고한 칼뱅주의적 관점을 취한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공존하는 문제를 풀 수 없는 신비로 남겨 두는 무의 입장이나, 바르트의 영향이 감지되는 크랜필드의 해석과 뚜렷이 대비된다. 결론적으로 슈라이너의 로마서는 목회자와 신학생 모두에게 신뢰받는 표준적 복음주의 주석으로서 학문성과 실천성을 겸비했지만, 새 관점에 대한 비판적 거리와 뚜렷한 개혁주의적 색채를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는 평가가 따른다.
N. T. 라이트 로마서 주석 (2002)
N. T. 라이트 / IVP / 2025
라이트의 로마서 주석은 각 단락 주해 뒤에 "성찰(Reflections)"이라는 현대적 적용 항목을 따로 붙이는 NIB 시리즈 특유의 구성을 취하며, 이런 구조는 주해적 결론들이 현대에 적용되는 방식에 대한 풍성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 주석에서 흥미로운 점은, 라이트의 해석이 바르트-케제만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수직적·우주론적 개입과 크랜필드-스토트-무로 이어지는 언약적 연속성 및 인간론적 강조를 하나의 틀 안에서 통합적으로 읽어낼 패러다임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이 틀의 중심에는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는 거대서사가 자리하는데, 아담의 타락 이후 아브라함을 통해 이스라엘을 언약 백성으로 세우시고, 그 백성을 통해 결국 악을 물리치고 피조 세계를 바로잡으신다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이야기다. 이 거대서사 안에서 메시아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은 한편으로는 죄, 사망, 사탄이라는 우주론적 원수들을 단번에 물리친 하나님의 수직적 개입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이 감당하지 못한 언약 백성의 역할을 메시아가 대표자로서 이어받아 악에 대한 반전적인 승리를 이룬 언약적 성취다. 라이트는 이 거대서사를 바울 세계관의 기본 구조로 삼아, 로마서 1장에서 9-11장의 절정에 이르는 바울의 논증을 읽어내는 해석적 토대로 삼는다. 이러한 독법은 제임스 던의 관점과 다르다. 던이 바울 복음의 배경으로 유대교의 민족주의와 그 배후의 죄와 사망 문제에 집중하는 반면, 라이트는 유대교 민족주의를 창조부터 종말에 이르는 이스라엘 중심의 언약적-우주론적 거대서사 안에 위치시키며, 죄와 사망에 대한 승리 또한 동일한 거대서사의 절정을 나타내는 메시아의 언약 성취이자 우주적 승리로 읽는다. 라이트에 대한 비판은 이 거대서사의 정당성에 집중된다. 라이트가 재구성한 이 거대서사가 독특하고 논쟁적임에도 그는 마치 이것을 자명한 것으로 여기며 본문의 미묘한 반향들을 그에 대한 뒷받침의 근거로 과도하게 동원한다는 지적이다. 라이트의 신학적 입장에 대해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그의 언약론은 중요한 통찰을 제시한다는 호평을 받지만, 구원론에 대해서는 정통 개혁주의 교리로부터 이탈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물론 이탈의 정도와 심각성에 대한 인식은 다양하다. 로마서 9장의 예정론에 있어서도, 개인 구원의 예정 문제를 거의 우회하고 이스라엘과 열방의 공동체적 언약 이야기로 풀어가는 라이트의 독법은 크랜필드, 슈라이너, 무와 다르며, 이 궤적을 두고 평자들 사이에서 인정과 염려가 뒤섞인 반응이 나타난다. 결국 라이트의 로마서 주석은 바울의 복음을 창조부터 종말까지 잇는 하나의 이야기로 읽어내는 신학적 상상력에서 독보적이지만, 그 서사가 본문을 얼마나 정직하게 통제하는지, 그 결론이 얼마나 개혁주의 구원론의 경계 안에 머무는지는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Romans: A Commentary (2006)
로버트 쥬웻 / Fortress Press / 2006
쥬웻의 Hermeneia 로마서 주석은 25년에 걸친 작업의 결실로, 거의 1,2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과 철저한 수사비평, 사회과학적 분석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그의 주석적 결론들에 대해서는 평가가 갈린다. 예를 들어 제임스 던은 이 주석을 "현대에 나온 가장 뛰어난 주석 가운데 하나"로 극찬하는데 이는 쥬웻이 크랜필드식 법정적 전가 교리를 거부하고 칭의를 유대인과 이방인 분파 사이의 사회적 화해라는 수평적 차원으로 읽어내는 새 관점적 노선을 취한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자연스럽게 개혁주의 진영에서는 쥬웻이 법정적 전가를 인정하지 않고 칭의를 사회적 화해로 읽는 것을 과도하게 수평적인 독법이라고 비판한다. 쥬웻의 사회-수사적 방법론 자체에 대해서도 문제가 제기된다. 예컨대 쥬웻은 로마서 전체를 로마 제국 이데올로기에 대한 은폐된 저항으로 읽어 8장 20절의 "허무한 데 굴복한 피조물"을 로마의 군사적 정복과 경제적 착취가 낳은 생태 파괴의 암시로 해석하는데, 이 반제국적 독법은 정작 로마 권세에 복종을 명하는 13장 1-7절과 정면충돌하며 본문에서 실질적 근거를 찾기가 어렵다는 비판을 받는다. 또한 그는 16장 인사 명단을 토대로 로마 교회들을 부유한 후원자의 저택에서 모이는 '가정 교회'와 서민층의 공동주택에서 모이는 소규모 공동체로 구분하고 각 공동체의 사회적 위치와 내부 조직까지 재구성하는데, 이러한 세부적인 사회사적 재구성은 현존하는 증거가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선 추론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런 식으로 쥬웻이 로마서의 상당 부분을 특정한 1세기 로마 교회의 역사적 상황과 연결하여 해석하는 방식은, 바울의 "모든 육체"와 "모든 사람"을 향한 보편적 인간론마저 지나치게 상황화함으로써 그 보편적 신학적 함의를 약화시킨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Hermeneia 특유의 비고백적 성격상 목회적 적용은 희박해, 쥬웻의 주석은 신학적 종합보다 사회사적 배경과 수사비평적 정교함에서 그 값어치가 두드러진다.
PNTC 로마서 (2012)
콜린 크루즈 / Eerdmans / 2012
크루즈의 PNTC 로마서 주석은 기념비적 대주석들과 경쟁하기보다, 로마서 연구의 방대한 학문적 유산을 목회자와 신학생이 실제로 소화할 수 있는 규모로 정련해낸 중간 수준 주석의 모범이다. 성공회 사제이자 신약학자인 크루즈는 복음주의 진영에 속하며, 칭의를 비롯한 구원론의 핵심 쟁점들에서 종교개혁 전통의 해석을 따른다는 점에서 크랜필드, 스토트, 무, 슈라이너의 노선에 서 있다. 이 주석에 대해 자주 언급되는 강점은 명료함과 균형이다. 로마서를 둘러싼 현대의 논쟁들을 정확하고 읽기 쉽게 요약하면서 학문적 깊이와 접근성을 결합했다는 점, 자신이 왜 그 입장을 택했는지 독자에게 늘 분명히 밝히면서 자신이 거부하는 견해들에도 지극히 공정하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특히 동성 관계, "온 이스라엘"의 구원, 여성 사도 유니아 같은 난제들을 다루는 짧은 "추가 노트"들은 로마서를 현대의 쟁점과 연결하는 이 주석의 백미다. 크루즈는 서론의 가장 긴 지면을 '바울에 관한 새 관점'에 할애해 주로 던과 라이트와 대화하는데, 새 관점 진영에 서지 않으면서 전통적 견해를 기계적으로 답습하지도 않는다. 던과 라이트의 로마서 주석이 모두 나온 뒤에 쓰인 이 주석은 새 관점을 사실상 간과한 피츠마이어나 정면으로 반박한 스토트와 달리 무르익은 논쟁의 결과를 목회자의 언어로 소화해주는 역할을 한다. 독자 구성 문제에서도 그는 스토워스의 이방인 전용 독자론이나 쥬웻의 세밀한 사회사적 재구성과 달리, 유대인과 이방인의 혼합 회중을 향한 "서신을 통한 사도적 목회"라는 절제된 전통적 견해에 머문다. 크루즈의 로마서는 비록 크랜필드의 깊이를 대체하지 못하지만, 스토트보다는 학문적으로 치밀하고 무와 슈라이너보다는 가벼운 그 중간 계단에 놓인 주석으로서, 로마서 해석의 전체 지형을 공정한 안내자와 함께 조망하려는 독자, 특히 시간에 쫓기는 설교자에게 가장 실용적인 선택지다.
NIGTC 로마서 (상)(하) (2016)
리처드 롱네커 / 새물결플러스 / 2020
롱네커의 로마서 주석은 그의 반세기 바울 연구의 결산으로, 1,100쪽이 넘는 분량 안에 번역·본문비평 주·형식/구조/정황·주석·성경신학·오늘을 위한 상황화라는 여섯 단계를 매 단락마다 반복하는 독특한 구성을 취한다. 이 주석의 최대 강점은 거의 모든 본문을 해석사의 맥락 안에서 다룬다는 데 있다. 오리게네스와 크리소스토모스, 아우구스티누스와 에라스무스, 루터와 칼뱅에서 현대 학자들에 이르기까지의 논의를 각 대목마다 요약해 주는 서술은 여러 평자들이 이 책값이 아깝지 않은 이유로 꼽을 만큼 탁월하다. 롱네커의 독자적 주장은 1:16-17을 편지 전체가 아닌 1-4장에 대한 주제문으로 제한하고, 5-8장을 편지의 중심 추동력으로 읽는 데 있다. 그에 따르면 사법적·법정적 언어와 개념이 사용되는 1-4장은 예루살렘 교회를 준거로 삼는 로마 교인들이 이미 동의하고 있는 공통 기반이고, 인격적·관계적·참여적 언어(화평, 화해, "그리스도 안에서")가 주를 이루는 5-8장이야말로 바울이 유대적 배경이 없는 이방인들에게 전하던 복음의 상황화, 곧 로마 교회에 주려 한 "신령한 은사"이다. 이렇게 무게중심을 5-8장에 두는 독법은 그의 지도로 학위를 받은 더글라스 캠벨에게서 극단으로 치닫는다. 캠벨은 케제만에게서 발원한 묵시적 해석에 과도하게 기울어, 1장 후반부터 3장 초반에 이르는 심판과 정죄의 법정적 논의를 바울 자신의 신학에서 아예 떼어내 가상의 대적 교사의 목소리로 돌려 버린다. 롱네커는 거기까지 가지는 않는다. 1-4장의 중요성을 약화시키되 그것이 바울 자신의 것이라는 점은 놓지 않으며, 거기서 나오는 법정적 칭의론도 대적 교사의 것이 아니라 여전히 바울의 것으로 남겨 둔다. 다만 5:1의 연결어와 5장의 전환적 성격 때문에 5-8장을 1-4장과 분리해 로마서의 중심에 두는 그의 논제 자체는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새 관점에 대해서 롱네커는 샌더스의 언약적 율법주의를 상당 부분 수용하면서도 일부 유대인들 사이에 실제 행위 구원론이 존재했다고 보아, "율법의 행위"를 할례와 안식일과 음식법 같은 경계 표지로 좁혀 읽는 던과 라이트의 규정은 거부한다. 로마서 7장의 "나"에 대해서도 그는 바울의 자전적 고백이 아니라 인물화된 발화(prosopopoeia), 곧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간 일반의 비극을 극화한 수사적 장치로 읽는다. 서술 방식도 걸림돌이다. 만연한 서술은 특정 절에 대한 그의 판단을 분별하기 어렵게 만들고, 해석 선택지들을 저울질하며 근거를 제시하는 작업이 약한 편이다. 분량 배분도 고르지 않고(2:1-16에 48쪽, 6:1-14에 11쪽), 라이트의 로마서 주석이 참고문헌에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지적된다. 설교를 위해 가장 먼저 고를 주석은 아니지만, 로마서 해석의 역사를 한 권으로 조망하려는 독자에게는 경쟁자가 거의 없는 책이다.
ZECNT 로마서 (2018)
프랭크 틸만 / Zondervan / 2018
틸만의 로마서 주석은 롱네커나 무의 대작과 스토트의 경량 주석 사이의 빈자리를 메우는 책으로 강점은 세 가지다. 첫째, 20여 쪽에 불과한 짧은 서론이 통상적인 저작·수신자·연대 논의 대신 주후 50년대 로마의 생활 세계를 복원하는 데 집중한다. 노예제, 영아 유기, 빈곤, 그리고 한 사람의 성공이 이웃의 몫을 갉아먹는다고 여겼던 제로섬 사회 심리를 그려낸 뒤, 그런 도시에서 그리스어를 쓰며 살아가던 가난한 신자들에게 이 편지가 읽혔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각인시킨다. 둘째, ZECNT 특유의 편집 구조—문학적 문맥, 핵심 사상, 도해된 사역, 구조 분석, 주해 개요, 본문 해설, 그리고 '적용을 위한 신학'—가 설교 준비 과정을 그대로 따라간다. 셋째, 본문 해설에서는 그리스어 구문의 윤곽만 짚어 논증의 흐름을 읽기 쉽게 유지하는 대신, 월러스나 저윅 같은 고급 문법서와 이차 문헌으로 향하는 안내는 각주에 상세히 쌓아둔다. 틸만은 과거 작품들에서 유대교 자료를 직접 다뤄온 학자답게 새 관점을 무시하지 않고 그 강점까지 검토한 뒤 전통적 입장을 옹호하며, "하나님의 의"를 하나의 정의로 환원하지 않고 하나님 자신의 의로우심, 구원하는 능력, 그가 주시는 법정적 신분이라는 여러 층위를 함께 읽어내는 다의적 해석을 제시한다. 특히 로마서 1:17의 "의"에 유대인과 이방인을 편애 없이 동일하게 대하시는 하나님의 공정성이라는 오래된 교부적 독법을 되살린 점이 독창적이다. 로마서 7장의 "나"는 바울이 채택한 불신자의 페르소나로 읽는다. 아쉬운 점은 서론이 지나치게 간략해 해석사와 새 관점 논쟁의 지형을 한눈에 보여주지 못하고, 무나 슈라이너에 비하면 논쟁적 대목에서 여러 해석 선택지를 저울질하며 근거를 상세히 펼치는 작업이 상대적으로 얇다. 그럼에도 설교 준비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며 로마서의 논증을 붙들려는 목회자에게는 크루즈와 더불어 가장 손이 자주 가는 중간 규모의 주석으로 꼽힌다.
EBTC 로마서 (2021)
데이비드 피터슨 / Lexham / 2021
피터슨의 EBTC 로마서는 시리즈의 이름 그대로 성경신학을 중심축으로 삼아 접근성을 높인, 복음주의권 학자들의 기획이라는 정체성을 충실히 구현한 주석이다. 무어 신학대학과 오크 힐 칼리지에서 평생 신약을 가르치고 설교해온 저자는 "본문에 대한 관심을 학문적 논쟁에 대한 관심보다 우선시했다"고 스스로 밝히는데, 이 원칙은 시리즈 전체의 편집 목표—각 성경책을 구속사 전체 안에 위치시키고 정경 전체와의 신학적 관계를 조명하는 것—와 정확히 맞물린다. 책은 창조-죄-아브라함의 언약-이스라엘의 율법-궁극적 구원이라는 성경 전체의 구속사적 궤적을 따라 14개 주제를 다루는 약 50쪽 분량의 "성경신학적 주제" 개관이 먼저 나오고, 이어 그리스어 논의를 각주에 배치해 원어를 몰라도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한 약 500쪽의 본문 주해가 뒤따른다. 로마서 6장을 경첩으로 삼아 전반부의 "복음의 확증"과 후반부의 "복음의 변호"가 교차하는 구조 분석이 독특하며, 신학적 주제와 본문 주해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학자와 설교자 모두에게 실용적이다. 다만 이 저술 원칙은 동시에 한계로도 지적되는데, 피터슨은 새 관점 논쟁이나 "로마서 논쟁" 자체에 지면을 거의 할애하지 않아, 스토트-크루즈-무-슈라이너로 이어지는 사다리에서 이미 확립된 대응 논리를 계승하되 그 논쟁을 전면화하지 않고 우회하는 쪽을 택한다. 그 결과 신학 논쟁의 최전선을 좇기보다, 성경신학적 서사와 접근성이라는 시리즈 고유의 강점을 통해 로마서를 성경 전체의 이야기 속에 안정적으로 위치시키는 안내서로서 기능한다.
Romans: A Theological and Pastoral Commentary (2022)
마이클 고먼 / Eerdmans / 2022
고먼의 로마서는 저자 스스로 밝히듯 로마서를 "생명의 서신"으로 읽어내며, 참여(participation)·십자가형태성(cruciformity)·변화(transformation)라는 자신의 대표 주제들을 로마서 전체에 관철시킨 신학적·목회적 주석이다. 그는 서론에서 새 관점, 묵시적 바울 신학, 내러티브적 접근, 반제국주의적 독법 등 현대 바울 연구의 여러 갈래를 소개하며, 자신은 참여주의자(participationist)임을 명시하고 로마서를 신자가 "아담 안"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져 그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는 이야기로 풀어낸다. 절 단위의 문법적 주해보다 큰 해석적 비전을 로마서 전체에 관철시키는 서술 방식은 무·슈라이너·크루즈·피츠마이어 등의 정밀 주해형 주석들과는 뚜렷이 구별되며, 오히려 하나의 신학적 주제를 서신 전체의 해석 원리로 삼아 처음부터 끝까지 밀고 나간다는 점에서 바르트나 케제만의 방식과 구조적으로 가장 가깝다. 다만 바르트와 케제만이 각각 변증법적 "아니오/예"와 묵시론적 우주적 권능이라는 무거운 신학적 주제를 관철시킨다면, 고먼은 참여와 변화라는 훨씬 목회적이고 온건한 주제를 관철시킨다는 점에서 방향은 크게 갈린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개신교와 가톨릭이 공유하는 신학적 공통분모에 호소하는 에큐메니컬한 감수성인데 고먼이 개신교 신학자로서 볼티모어의 가톨릭계 신학교 St. Mary's Seminary & University에서 수십 년간 가르쳐온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각 단락 끝에 배치된 독자용·설교자용 성찰 질문은 실천적 유용성을 높이는 요소로 꼽히지만, 학문적 논쟁에 깊이 개입하여 대안적 해석들을 반박하기보다 자신의 독법을 제시하는 데 집중하는 방식은 한계로 지적되기도 한다.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한 로마서 9-11장의 논의를 명료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아쉬움도 제기된다. 고먼의 주석은 참여와 변화라는 바울 신학의 실존적 차원을 교회의 언어로 되살려내는 목회적 안내서로 유용하다.
NTL 로마서 (2024)
비벌리 로버츠 가벤타 / Westminster John Knox Press / 2024
가벤타의 NTL 로마서 주석은 프린스턴에서 은퇴한 뒤 베일러에서 강의를 이어간 저자가 수십 년간 축적한 바울 연구의 결실로, 로마서를 하나의 "사건"으로 읽어내는 관점이 전체를 관통한다. 여기서 사건이란 이 편지가 바울의 사역에서 차지하는 특정한 역사적 순간이라는 의미와, 복음 자체가 죄와 사망에 사로잡힌 우주 전체를 되찾는 하나님의 침투 행위라는 의미를 동시에 가리키며, 이 이중적 사건 개념 위에서 가벤타는 문학적·역사적·신학적 독법을 통합한다. 서신 전달자이자 낭독자였던 뵈뵈를 통해 로마의 청중이 이 편지를 어떻게 "들었을지"를 시종 의식하는 접근은 이 주석의 뚜렷한 개성이다. 거의 40쪽에 이르는 참고문헌 목록이 보여주듯 암브로시아스터와 크리소스토모스 같은 교부부터 종교개혁을 거쳐 현대 학계까지 해석사를 폭넓게 끌어오는 솜씨도 돋보이며, 준전문 수준의 주석으로는 드물게 잘 읽히는 문장은 이 책의 미덕으로 자주 꼽힌다. 가벤타는 케제만에게서 발원한 묵시론적 바울 해석의 계보에 속하되 유니온 신학교에서 자신을 가르친 J. 루이스 마틴을 통해 그 유산을 전수받은 학자로서, 마르티누스 드 부어나 더글라스 캠벨과 함께 이 학파의 현재를 대표하는 인물로 거명된다. 죄와 사망을 인간의 개별적 잘못이 아니라 피조물 전체를 사로잡은 우주적 권세로 읽어내고, 그리스도 사건을 이스라엘 역사와의 점진적 연속이 아니라 옛 시대를 단절시키는 하나님의 일방적 침투로 이해하는 그의 독법은 이 계보의 문법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다만 같은 계보 안에서도 방향은 갈리는데, 캠벨이 로마서 1장 후반부터 3장까지를 가상의 대적 교사의 목소리로 돌려버리는 급진적 재배치로 나아간 반면 가벤타는 그 길을 따르지 않는다. 아쉬운 점도 있다. 20쪽 남짓에 그치는 서론은 이 분량의 주석치고 이례적으로 짧아 해석사와 새 관점 논쟁의 지형을 한눈에 보여주지 못한다. 또한 로마서 3장의 "그리스도의 신실함" 언어를 다룰 때 그리스도의 신실함과 하나님의 행위, 신자의 믿음 사이의 경계가 흐려진다는 지적이 있으며, 이와는 별개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해석에서 형벌적·사법적 언어의 무게가 상대적으로 약화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 책은 케제만이 열어젖힌 묵시론적 독법을 반세기 뒤 한 권의 완결된 주석으로 구현해낸 저작으로, 법정적 칭의를 로마서 해석에서 강조하는 크랜필드-무-슈라이너와 나란히 놓고, 나아가 이스라엘의 역사와 그리스도 사건을 하나의 거대서사로 잇는 라이트(정작 가벤타는 그를 좀처럼 인용하지 않는다)와 함께 읽으며 균형을 잡을 것을 권한다.


















